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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작성일 : 13-03-31 19:56
아날로그와 인문학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534  
요즘 '인문학 교육'이 새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유수의 대학들은 물론 대기업들까지 인문학 인재들을 등용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과와 이과의 구분이 일제시대 이래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던 한국 교육의 병폐인 비통섭적인 외골수 인재형들에 대한 반성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깊은 사고와 통찰력의 자양분인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재인식, 통섭적 인재형에 대한 갈구란 한국 사회의 최대 당면 이슈가 부각되기 이전부터 IYNN은 이러한 한국 교육의 병폐를 인지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교수들을 한데 모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 디베이트, 글쓰기 등을 통해서 새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들을 양성하는데 기여하고자 했다.
 
다음은 "주간경향"(1109호, 2013년 4월 2일자)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의 '아날로그와 인문학'이란 좋은 글이다.
 
라디오를 듣습니다. 밤 시간대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입니다.

어린 시절 TV가 없을 때에는 묵직한 라디오 수신기로 어린이 드라마를 들었고, 학교 시절에는 야간 자습시간에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의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라디오를 다시 듣게 된 것은 차를 운전하면서부터입니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통해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을 듣고 있습니다.

큰 건전지가 달린 라디오에서 워크맨으로, 자동차의 라디오로, 컴퓨터 속의 라디오로 옮겨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프로그램 자체입니다. 이제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도 있지만 굳이 라디오가 들려주는 음악을 듣습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한 생활 속에서도 여전히 아날로그가 살아 있는 것은 기계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계는 사람의 마음을 옮기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글을 원고지에 쓰든, 타자기로 치든, 워드프로세서로 치든, 컴퓨터에서 쓰든 아날로그 작업인 글쓰기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글쓰기이지, 글을 담는 기계가 아닙니다. 모든 생활이 디지털 기계에 맞춰져도 결국 그 생활의 중심은 인간입니다. 아무리 디지털 문화가 첨단으로 발전해도 인문학이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성이 인문·예체능 계열 전공자를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육성하는 통섭형 인재 양성을 위한 SCSA(Samsung Convergence Software Academy) 프로그램을 발표했습니다. 애플·구글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삼성이 선택한 혁신의 한 방법입니다. 디지털이 진화할수록 글로벌 경쟁에서 인문학이 보다 더 핵심적인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마조도일(馬祖道一) 스님이 하루는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양(懷讓)선사가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회양선사가 기왓장을 가지고 와서 갈기 시작했습니다. 도일스님이 물었습니다.

“스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하지.”

“기왓장을 어떻게 거울로 만듭니까?”

회양선사가 대답했습니다. ,

“그럼 너는 좌선해서 어떻게 부처가 되려 하느냐!”

도일스님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수레가 가지 않을 때에 소를 때려야 옳으냐, 수레를 때려야 옳으냐?”

이 한 마디에 도일스님은 크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가 수레를 이끌고 있는데, 수레가 앞으로 나가지 않으면 소를 때려야 할까요? 아니면 수레를 때려야 할까요? 사람들은 답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다고 해서 이대로 실천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도일스님이 좌선만 열심히 해서 부처가 되려고 했듯 말입니다.

인문학이 디지털 문화를 만들고,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동안 수레를 앞으로 나가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은 소를 때리지 않고 수레를 때려 왔습니다. 여러분은 소를 때리겠습니까, 수레를 때리겠습니까?